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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강원도 횡성으로 간 까닭은?

최고관리자 0 1,353 2018.09.26 11:58

그가 강원도 횡성으로 간 까닭은?
기자가 그의 자택 앞에서 路上 대화를 나눴다


⊙ 지난 9월 6일 오전 9시30분경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자택 앞서 기자와 대화
⊙ “난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 지금 와서 무슨 말을 하나” 정치 관련 질문에 손사래
⊙ 3년 전 둔내면 정착, 24평형 아파트 거주… 매입한 인근 8만 평 땅에 목장 짓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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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지난 9월 6일 아침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정윤회씨를 만났다.
  “알다시피 나도 조용히 이제 동네 사람들하고 어울려서 동네 사람이 됐는데, 자꾸 이러면 내가…. 아니 쓸데없이 왜 나한테 자꾸 이래. 그러는 건 좀 아니잖아. 필요할 때 가서, 필요한 데 가서 하라고. 내 거 (인터뷰) 쓸 필요가 없잖아. 난 더 이상 할 말 없고, 내가 아는 것도 없어. 내가 지금 와서 무슨 말을 하겠어. 그냥 가.”
 
  지난 9월 6일 오전 9시30분경,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의 한 아파트로 들어갔다. 호수를 확인하고 벨을 눌렀다. 반응이 없어 다시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라는 말과 함께 약 1분 뒤 그가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방문객이 기자임을 확인한 뒤, 순순히 아파트 복도로 나왔다. 낮은 목소리로 “여기는 (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내려가자고 했다. 기자와 함께 계단을 걸어 내려오며 말했다.
 
  “참나…. 뭐 하러 그렇게까지 (찾아오면서) 하나. 아니 나하고 더 할 얘기가 뭐 있어요.”
 
  아파트 담장 밖 주차장으로 나온 그는 용무늬가 그려진 전자담배를 피우며 기자와 대화를 나눴다. 흰 티셔츠, 흰 야구 모자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서관이자 최순실씨의 전 남편, 한때 ‘비선 실세’로 지목되기도 했던 정윤회(鄭潤會·62)씨와의 만남은 이렇게 이뤄졌다.
 
 
  박근혜 ‘25년형’ 선고 후 정씨 단독 접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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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위 ‘국정농단’ 사태로 박근혜 정권이 탄핵된 후, 관련자들이 구속·재판받는 상황에서 정씨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정씨의 존재가 본격적으로 일반 국민들에게 알려진 때는 2014년 11월 《세계일보》의 이른바 ‘정윤회 문건’ 보도가 나가면서부터다.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해당 문건은 정씨를 ‘비선 실세’로 지목했다. 정씨가 ‘문고리 3인방’ ‘십상시(十常侍)’로 불린 박근혜 청와대 비서진과 정기적으로 모여 국정에 개입했다는 내용이었다. ‘최순실’이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나온 것도 이때였다. 사건 당시 문건 작성자로 알려진 박관천 청와대 행정관은 “우리나라의 권력 서열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 최순실씨가 1위, 정윤회씨가 2위,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고 했다.
 
  한편 ‘정윤회 문건’에서 십상시로 지목된 A씨는 지난 7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정윤회를 본 적이 없다. 마주칠 일이 없었다”며 “(십상시 모임이 있었다고 알려진 중식당은) 나는 가본 적도 없는 곳”이라고 했다. A씨는 “중식당 사장이든 다른 손님이든 나나 다른 행정관의 얼굴을 알아볼 사람이 어디 있겠나. 사장이라면 정윤회나 3인방의 얼굴을 안다 한들 그들이 누구와 만나는지 어떻게 알 수가 있나”라며 “(문건에 나온 ‘국정 개입’ 회합은) 모두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했다. 당시 그의 말이다.
 
  “그야말로 ‘지라시’ 수준의 문건이다. 청와대에는 그런 문건이 하루에 수십 건씩 돌아다닌다. 국정원도 그렇지 않은가. 그 모두가 팩트라고 볼 근거는 없다. 워낙 황당무계한 이야기라 억울하지도 않고 반박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십상시로 불린) 10명은커녕 그중 서너 명도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사람들이다. 박 대통령은 말이 돌아다니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다. 박 대통령을 아는 측근들이라면 여러 명이 모여서

청와대나 박근혜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 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8월 24일 2심에서 징역 25년, 벌금 200억원을 선고받았다. 1심 선고보다 형량이 늘었다. 대법원 상고도 포기했다. 같은 날 최순실씨는 징역 20년, 벌금 200억원을 선고받았다. “두 사람과 일찍부터 거리를 뒀기 때문에 화를 면할 수 있었다”던 정씨라지만 지켜보는 마음이 좋지는 않을 터였다. 인연을 맺은 전처와 자기가 모신 주군이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상황에서 그는 어떤 기분일까.
 
 
  20년 된 ‘서민아파트’서 3년째 홀로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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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회씨는 기자의 예기치 않은 방문에도 문전에서 인터뷰를 거절하지는 않았다. “할 말이 없다. 돌아가라”는 의사를 밝혔지만, 직접 집 밖으로 나와 얘기를 나눌 만큼 성의를 보였다.
  정씨는 기자의 예기치 않은 방문에도 문전에서 인터뷰를 거절하지는 않았다. “할 말이 없다. 돌아가라”는 의사는 밝혔지만, 직접 집 밖으로 나와 얘기를 나눌 만큼의 성의는 보였다. 수염과 구레나룻이 희끗했고, 과거 TV에서 볼 때보다 얼굴도 조금 검고 말라 보였다. 그는 세상일에 초연해진 듯 담담하게 말했다. 정씨는 ‘대통령과 전 부인이 재판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는데 심경이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나는 그런 것에 대해 (아무런) 심경도 없다. 더 이상 할 얘기가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작년에 딸 정유라씨 빌딩에 괴한이 침입했는데 걱정되지 않느냐. 연락하고 지내느냐’는 질문에는 “그것도 뭐, 더 이상 말하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대한승마협회가 지난 3월 정유라씨에게 ‘훈련비 반환 소송’을 제기한 사건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면서도 “소송 걸 게 뭐 있나”라고 반문했다.
 
  강원도 정선군 출신인 정씨는 3년 전 서울 생활을 접고 둔내면으로 내려와 현재 한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 주민들 말에 따르면 이 아파트는 건립된 지 20년이 넘었고 두 동을 합해 총 300가구가 살고 있다. 비교적 값이 저렴해 ‘서민아파트’로 불린다고 했다. 그는 작년 7월까지 약 2년 동안 ‘24평형(58.189m2, 실평수 18평) 세대’의 전셋집에서 살았다. 그해 9월 매물로 나온 같은 동, 같은 평수의 아파트를 7200만원에 매입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 부동산 업자 설명에 따르면 그의 집은 주방·베란다와 연결된 거실과 방 2개, 화장실 1개로 이뤄져 있다.
 
  주민들도 정씨가 “이 동네, ‘둔내 사람’이 다 됐다”고 했다. 정씨는 “둔내에 산 지 오래됐다”며 “(주민들과) 인사하고 지낸다”고 했다. 실제 그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평은 좋았다. “점잖고, 정중하고, 겸손하고, 매너 있다”고 했다. 2016년 말 ‘최순실 사태’가 나기 전까지 “엄마가 해주던 맛”이라며 ‘6000원짜리 한식 뷔페’와 ‘7000원짜리 백반 식당’을 곧잘 찾았다. 이에 대해 묻자 정씨는 희미하게 웃으며 “나도 먹고는 살아야지”라고 했다.
 
 
  “목장·전원주택 짓고 살려고 내려왔다”
 
  정씨는 주민들이 알아보고 먼저 다가와도 피하지 않았다고 한다. 함께 어울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막국숫집 직원은 “가끔 국수 드시러 오신다. 지난 6월에 본 것 같다”며 “주민들과 함께 오실 때도 있다. 야구 모자는 꼭 쓰더라”고 했다. 닭갈빗집 사장은 “여기 리조트 본부장, 소고깃집 사장과도 친하다. 동네 사람 다 됐다”며 “그 양반, 옛날하고 다르다. 점잖고 털털해서 사람들이 나쁘게 말도 안 하더라”고 했다. 그의 회고다.
 
  “주민 둘이 (가게에서) 식사를 했는데 내가 ‘아니 요즘 (같이 어울리던) 정윤회씨는 안 오시네요’ 물었어요. 그랬더니 (한 사람이 정씨에게) 전화를 해서 ‘저녁 드셨어요? 여기 왔는데 드시러 오세요’ 하니까 나오더라고요. 술은 한 잔씩은 하는 거 같아요. 많이는 안 하고. 친구들과 같이 앉아서 식사할 때 소주 한 잔, 맥주 한 잔 정도죠. 좌우지간, 평은 좋다는 거야.”
 
  “(식당에서) 식기를 반납하다가 잔반통에 숟가락이 빠졌는데, 주인이 ‘괜찮다고’ 말려도 손을 넣어 줍는 모습에 ‘겸손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증언도 있었다. 한 식당 직원은 “몇 년 전 ‘함바집’(건설현장 식당) 할 때부터 밥 먹으러 왔다. 혼자 오는데 예전에는 누군지도 몰랐다”며 “그때는 반찬도 몇 가지 없었는데 맛있다고 자주 왔다. 사람이 참 정중했다”고 했다.
 
  정씨의 과거 전셋집 주인은 “정치적인 거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보이는 건 괜찮다. 최순실과는 이미지가 딴판이더라”며 “사람이 되게 유하다. 지금 적응 잘하고 있다”고 했다. 그와 만난 적이 있다는 60대 철공소 주인의 회고다.
 
  “그 사람 여기 산 지만 한 3년 될걸. ‘최순실 사건’ 터지기 전에 7000원짜리 백반집에서 두 번 봤어요. 점잖고, 남자가 봐도 잘생겼더구먼. 허세 가득하게 말하는 것도 없고. 내가 ‘혹시 정윤회씨입니까’ 하니까 ‘혹시 토박이냐, 나는 얼마 전부터 여기 살았다’고 하더군요. 큰 땅 사서 ‘목장·정원·전원주택 짓고 살려고 내려왔다’고 하더라고. 사실 그 땅을 내 지인이 갖고 있다가, 서울 업자에게 판 걸 정씨가 다시 산 거야.”
 
 
  밀짚모자 쓰고 인부들과 막걸리 마시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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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 소유로 알려진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삽교리의 땅. 주민의 도움을 받아 찾아간 산비탈에는 벌목의 흔적들이 보였다.
  정씨는 2015년 8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둔내면 삽교리의 땅을 사들였다. 총 8만 평에 육박(7만8887평, 26만783m2)하는 규모라고 한다. 삽교2리 주민은 “작년 가을, 청태산로 펜션 인근 땅에서 (인부들이) 나무를 많이 베더라”며 “지인에게 ‘왜 저렇게 벌목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사실 저 일대가 정윤회 땅인데 펜션을 짓는다’는 말을 들었다. 삽교2리뿐 아니라 삽교1리에도 땅이 있다고 하더라”고 했다. 정씨는 실제 ‘삽교리 땅에 목장 짓느라 아침부터 감독하기 바쁘다고 들었다’는 기자의 질문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기자는 주민의 도움을 받아 정씨의 땅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갔다. 예상과 달리 차가 없으면 다니기 힘들 정도로 깊은 산속에 있었다. 풍경만으로는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인 것 같았다. 산비탈에 잘린 나무 밑동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트럭과 포클레인, 축사로 보이는 건물도 있었다. 닭갈빗집 사장은 “그 양반,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하는 사람 많을 것”이라며 “낮에는 현장에 주로 가 있을 것이다. 거기(삽교리 땅)에 집 짓는다고 매일 토목공사 하느라 얼굴이 (타서) 새카매졌다”고 했다. 인근 모텔 사장의 회고다.
 
  “그분 일 도와주는 인부들이 가끔 이곳에 묵어요. 몰라보게 말랐다던데요. 얼굴이 타서 여기 사람 다 됐다고.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는 편이죠. 밀짚모자에 하얀 티 입고 인부들과 같이 막걸리도 마신다고 합니다.”
 
  홀로 사는 정씨는 취미 삼아 피아노를 배우기도 했다고 한다. 아파트 옆의 피아노 학원에서 레슨을 꾸준히 받았다고 한다. 한 주민은 “피아노 학원 다닌 지는 꽤 오래됐다. 열심히 다녔다”며 “내가 그래서 ‘아이고, 피아노 배우고 다니시네’라고 말을 건 적도 있다. 얼마나 멋있나”라고 했다.
 
 
  “사람 살리는 직업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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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회씨가 살고 있는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의 전경. 주민들은 정씨가 “이 동네, 둔내 사람이 다 됐다”고 했고, 정씨도 “둔내에 산 지는 오래됐다. 주민들과 인사하고 지낸다”고 했다.
  정씨는 기자의 질문이 계속되자 “더 이상 나한테 (신경 쓰지) 말고 그냥 가라. 그냥 조용히 살고 있으니까 그렇게 알라”며 “심심하면 (기자들이) 늘 온다. 이제 할 말이 없다”고 했다. 1박 2일간 마을을 돌아다니며 본인의 근황 취재를 한 기자에게 충고를 건네기도 했다.
 
  “돌아다니면서 그런 거 물어보고 다니면 나한테 피해 주는 거야. 알아? 그런 짓은 하지 마. 그 왜 사람을 살리는 직업을 해야지, 자꾸 죽이는 직업을 하고 그래.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을.”
 
  기자는 정씨의 완강한 태도에 일단 명함 한 장을 주고 헤어졌다. 그는 기자가 돌아가려 하자 ‘헛수고를 했다’는 투로 걱정하며 “나는 아무 말도 안 했으니까…. 둔내면 여기까지 쓸데없이 (고생해서 찾아왔나) 얼른 가라”고 했다. 정씨는 기자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기자는 앞서 정씨의 근황 취재를 위해 대한승마협회 전직 간부와 접촉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의 딸 정유라씨를 통해 만나려고도 했다. 그녀가 최근 서울행정법원에 증여세 관련 소송을 제기했다는 보도를 보고, 해당 소송이 배당된 행정 6부에 문의를 했다. 소송을 대리하는 변호사를 알아내 정씨 부녀의 근황을 취재하려 했다. 행정 6부 담당 공무원은 기자의 질의를 일축했다.
 
 
  “정유라씨는 살지만…”
 
  정유라씨의 거처이자 최순실씨의 건물로 알려진 서울 강남구 신사동 미승빌딩을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압구정역 인근에 같은 이름의 빌딩이 세 곳이나 있어 헤맸다. 미승빌딩 출입구를 지키던 주차관리원은 “관리소장은 지금 출타 중이다. 언제 올지 모르고 온다고 해도 인터뷰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유라씨는 살지만 정윤회씨는 한 번도 온 적 없다”고 했다. 인근 마트 상인들도 “정유라씨는 지난겨울에는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걸 봤지만 정윤회씨 오는 건 못 봤다”고 했다. 압구정 파출소 경찰들도 “작년 11월 미승빌딩 괴한 침입 후 (딸 걱정에) 정윤회씨가 왔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이슈 될 일이 없었다”고 했다. 한 공인중개사는 “정윤회씨는 ‘최순실 사건’ 터지기 전, 길에서 한 번 본 적은 있다. 요즘은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윤회씨가 소위 ‘박근혜 청와대 십상시’들과 만남을 가졌다던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중식당에도 들렀다. 중식당 지배인은 “그게 언제적 이야기냐”며 “안 오신 지 꽤 됐다. 2014년 문건 터진 이후로 보지 못했다”고 했다. 미승빌딩 인근 편의점 주인은 “정유라씨는 작년까지만 해도 마스크 쓰고 혼자 자주 와서 커피·담배·음료수 등을 사갔다. 3~4세 된 아이와 손잡고 거니는 것도 봤다”면서도 “정윤회씨는 오가는 것을 못 봤다”고 했다.
 
 
  ‘어깨’들이 지키는 정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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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정윤회씨를 만나기 전날 정씨 아파트 주차장에서 그의 것으로 알려진 차종을 발견했다. “이 아파트에 정씨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지만, 다른 주민이 같은 차를 보유할 가능성도 생각해 이날 한동안 마을을 돌며 고민했다.
  기자는 이후 정씨가 둔내면 한 아파트에 산다는 말을 들었다. 정씨를 자택 앞에서 직접 만나기 전날 오후에 도착해 주민들을 취재했다. ‘인근 골프장에서 라운딩 연습하는 모습을 봤다’ ‘운전하는 걸 봤다’ ‘한 달에 몇 번 식사하러 온다’는 등의 증언을 들었다. 한 편의점 주인은 “(아파트에) 산다는 말 듣기는 했다. ‘어깨’ 형님들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말이다.
 
  “저기, 어깨 형님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깡패들. 한동안 최순실 사건으로 난리 났었을 때 어깨 형님들이 보호하고 있다고. 박근혜 탄핵될 때요. 그 아파트 살던 사람들이 얘기하더라고요. 같이 사는 주민들이 ‘깍두기들이 왔다 갔다’ 하니까 부담스럽다고 했어요. 지금은 없다고 하던데요.”
 
  반면 ‘오래된 아파트에 산다던데, 숨겨놓은 돈도 많을 사람이 그런 데서 살까’라는 의문 섞인 얘기를 듣기도 했다. ‘여기 산다는 건 2년도 더 된 옛날 얘기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진짜 둔내면에 사는지 의심스럽다’는 말도 들었다. 정씨가 사는 집을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일부 주민들의 말처럼 엉뚱한 곳에 온 걸 수도 있었다.
 
  날이 저물고 있었다. 아파트로 갔다. 어느 동인지는 알았지만 호수를 몰랐다. 관리인에게 묻자 “그분의 허락 없이는 관련 정보를 알려줄 수 없다”며 “요새는 없는 것 같다. 차도 잘 안 보인다”고 했다. 설령 정씨가 아파트에 확실히 산다고 해도, 그가 집을 비우면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기자는 아파트 주차장을 돌았다. 아파트 규모가 크지 않아 쉽게 둘러볼 수 있었다.
 
  순간 아파트 주차장 한구석에 정씨의 것으로 알려진 차종이 보였다. 고급 대형차였고 색깔도 같았다. ‘정씨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지만, 사실 아닐 수도 있었다. 다른 아파트 주민이 똑같은 차량을 몰고 다닐 가능성도 있었다. ‘차창에 연락처가 꽂혀 있지 않을까’ 살펴봤지만 없었다. 고민하며 마을을 돌았다. 휴대폰을 보니 저녁 8시였다. 사방은 이미 캄캄했다. 아파트 뒤편으로 가서 불 켜진 집들을 헤아렸다. ‘밤에 혹시 쓰레기를 버리러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입구 맞은편에서 잠복 준비를 했다.
 
 
  “이젠 작업복 입는 ‘털털한 주민’”
 
  그때, 기자가 늦게까지 마을 도는 모습을 지켜본 사람이 있었다. 둔내면에 가끔 들른다는 인부였다. 그는 “최근 아는 지인이 집을 구하러 갔는데 잘 알려준 식당이 있다. 이곳 사정을 잘 아는 토박이 같았다”며 기자에게 한 가게를 알려줬다. 가게 주인은 정씨를 비교적 잘 아는 것 같았다. 그의 도움으로 기자는 다음날 아침 정씨를 만날 수 있었다. 정씨에 대한 주인의 평가다.
 
  “내가 볼 때는 그분, 편안하게 잘 살고 있어요. 본인이 직접 세차장 가서 세차도 하고…. 여기 동네 사람 다 됐어. 겸손하니까 동네 사람들하고도 친해진 거예요. 여기는 잘난 척하고 있는 척하면 싫어해. 어디 뭐 집 하나 짓고 살면서 외제차 몰고…. 콧방귀도 안 뀌어요. 최순실씨도 여기 구속되기 전에 그분이랑 밥 먹고 갔어요. 박근혜 정권 때였지 아마. 그때는 (누군지) 몰랐지. 나중에 보니까 ‘그 여자’가 ‘그 여자’더라고. 밥값을 여자가 냈어. 참 세게 생겼더라고. (반면 정씨는) 그냥 뭐, 작업복 입고. 아주 털털해요. 주민이에요.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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